티스토리 뷰
올해는 을사년 (乙巳年) 입니다.
갑을병정 할때 을(乙) 과 자축인묘 할때 사 (巳) 가 만나서 을사년(乙巳年) 이 되었습니다.
아직 음력설이 오지않아 진정한 을사해는 아니지만 양음력을 같이 쓰다보니 양력설인 1월1일부터 을사년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간지에 따른 년호는 60갑자에 따라 60년을 반복하는데 과거 을사년 (乙巳年) 에는 무슨일이 있었는지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1905년 을사년 (乙巳年)
1. 을사늑약 체결 (1905년 11월 17일)
배경 :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점차적으로 조선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했고, 이는 일본이 조선을 본격적으로 장악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체결 과정 : 일본은 1905년 11월, 조선에 이토 히로부미를 특사로 보내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을 강요했습니다.
고종 황제는 강력히 반대했으나, 일본은 군사적 압박과 협박을 통해 조선의 대신들을 협상에 참여시키고 조약 체결을 강행했습니다.
조약 내용에 따라, 조선의 외교권이 일본에 완전히 박탈되었으며, 일본이 **통감부(統監府)**를 설치하여 조선을 사실상 보호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과 : 을사늑약으로 조선은 주권을 상실했고, 이후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을 통해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화했습니다.
2. 민족적 저항과 반발
황제 고종의 저항: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후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애국지사들의 항거:
많은 대신과 지식인, 민중이 을사늑약에 반발했습니다.
민영환: 을사늑약에 항의하며 자결.
조병세: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음.
전국 곳곳에서 항일 의병 운동이 발생했으며, 이는 이후 의병전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3. 통감부 설치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일본은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임명했습니다.
통감부는 조선의 행정과 외교를 통제하며 실질적으로 조선을 지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4. 국제사회의 반응
일본은 을사늑약 체결을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으나, 국제사회에서는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일본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해 묵인하는 태도를 보였고,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는 실질적인 행동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65년 을사년 (乙巳年)
1. 한일기본조약 체결 (1965년 6월 22일)
내용: 대한민국과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의 관계를 정리하고,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일본은 조약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습니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는 않았지만, 경제 지원(배상금의 성격으로 3억 달러의 무상 자금 및 2억 달러의 유상 차관)을 제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논란:
한국 내부에서는 이 조약이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고, 경제적 보상만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일본 역시 조약 체결 이후에도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반성과 사과를 회피하며, 한일 관계의 갈등 요소가 계속 남았습니다.
2.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정책 본격화
1960년대는 대한민국이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경제 성장을 도모하던 시기입니다.
1965년은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67~1971년)이 준비되던 해로, 일본과의 조약 체결로 얻은 자금이 경제 개발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는 도로, 철도, 공장 등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산업화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3. 베트남 파병
1965년, 대한민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맹호부대와 청룡부대를 베트남에 파병했으며, 이는 대한민국 군이 대규모로 해외 전쟁에 참여한 첫 사례입니다.
베트남 파병은 박정희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되었습니다.
4. 기타 국내외 사건
한국사회 내부의 변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며 농촌과 도시 간 격차가 커졌습니다.
학생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정부의 대일 외교와 경제 정책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었습니다.
국제 정세:
동아시아에서는 냉전 구도가 심화되었고, 미국과 소련 간의 대립 속에서 한일 관계가 미국의 동맹 전략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두 해를 보면 일본과의 조약이 반복되고 있네요. 올해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좋은 일로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력의 시작과 발전 이야기: 전통과 과학의 만남 (2) | 2025.01.02 |
---|---|
2025년, 2024년과 달라지는 것 10가지정리 (5) | 2025.01.01 |
메이데이 긴급신호 (1) | 2024.12.29 |
여러나라 자동차 안전도 인증기관 (0) | 2024.12.29 |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왜 보수로 기울었나. (1) | 2024.12.27 |
- Total
- Today
- Yesterday
- sellbymusic
- 한국음력
- 장기요양보험
- 확정일자
- 생활꿀팁
- 셀바이뮤직
- 요양등급
- 가톨릭
- 성체조배하는법
- 차량안전성평가
- 성시간알기
- 을사년
- 재가급여
- 살균제
- 달러결제
- 임대차계약
- 사과
- ai부수입
- 사과방제
- 방제약
- 안전한차
- 노인장기요양보험
- 탄저병
- 대통령
- 비닐하우스
- 혼용정보
- 탄핵
- 고추
- 전입신고
- 생활품목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